[여의도TALK]2013년 서정진과 2021년 진양곤의 ‘묘한 기시감’
최종수정 2021-02-19 07:35
공매도 시세조종 민원 제기 후 금융당국에 역공....8년 전과 판박이
국내 공매도 잔고 1위...주가 급락에 공매도 세력 ‘저가 매수 기회’
밝혀진 사실 없이 의혹만 모락모락...관피아 소행 의심하는 개미들
그래픽 박혜수 기자 hspark@newsway.co.kr
최근 에이치엘비의 ‘임상결과 허위공시’ 의혹으로 증권가가 떠들썩합니다. 관련 보도가 나온 지난 16일, 에이치엘비는 전 거래일 대비 27%나 급락했고 동학개미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진양곤 회장이 유튜브 생중계로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죠.진 회장은 허위공시 혐의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에이치엘비가 미국 내 3상 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임상 시험 결과가 실패에 가까웠는데도 성공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겁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진 회장이 공매도 문제로 금융당국에 찍힌 것 아니냐는 추측이 오가고 있습니다. 에이치엘비는 코스닥 시장에서 공매도 잔고가 가장 많은 종목입니다. 진 회장은 공매도 세력이 편법으로 시세를 조종하고 있다고 보고, 증권사에 대한 조사를 금감원에 요청했었죠.
그런 점에서 이번 에이치엘비 사태는 지난 2013년 셀트리온을 떠올리게 합니다. 증선위는 당시 서정진 회장 등 경영진을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공매도 세력의 시세조종 혐의를 밝혀달라는 민원을 제기한 뒤 벌어진 일입니다.
에이치엘비와 비슷한 처지인 셀트리온은 코스피의 공매도 잔고 1위 종목입니다. 서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신약개발보다 공매도와 싸우는 게 더 힘들다”며 숱하게 어려움을 토로해왔는데요. 도둑을 못 잡은 경찰이 되레 신고자를 잡아간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당시 서 회장은 공매도 세력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했다는 이유로 약식기소에 따른 벌금 3억원만 냈습니다. 국내 최고의 바이오기업 총수가 검찰에 고발된 대형 사건이지만 다소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됐습니다.
다시 종합해보면 금융당국은 공매도 세력을 조사해달라는 진 회장과 서 회장에게 칼날을 겨눴습니다. 물론 쟁점은 허위공시와 시세조종으로 차이가 있지만 발단은 ‘공매도’가 분명해 보입니다. 정말 금융당국은 공매도 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를 희생양으로 삼은 걸까요.
사실이 어떻든 금융당국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을 거치며 ‘복마전’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공매도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셀트리온에 이어 에이치엘비까지 역공을 당하자 개인투자자들의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뀌어 가는 듯합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언론과 금융당국, 공매도 세력이 한통속이 되어 개인투자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금융당국 관계자가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인 양 언론에 흘려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건데요. 이번 언론 보도 하나로 에이치엘비의 시가총액 1조8000억원이 증발했죠.
케이스트리트베츠 관계자는 “에이치엘비의 허위공시 혐의는 공매도 논란에 대한 물타기 또는 여론호도가 목적이라고 본다”며 “정황상 지난해 11월에 자본시장조사단의 조사가 끝났는데 왜 공매도 논란이 커진 지금에서야 보도가 나왔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에이치엘비 측과 투자자들은 ‘리보세라닙’의 효능은 500건이 넘는 전세계 논문을 통해 입증됐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항서제약도 이미 리보세라닙에 대한 로열티를 수령했는데, 의학 전문성이 없는 금감원 조사원이 무슨 근거로 ‘임상 실패’로 단정 짓냐는 겁니다.
에이치엘비 투자자 A씨는 “임상결과는 전문적인 의학, 약학 분야여서 논박을 하려면 전문가 집단의 조언은 필수적”이라며 “리보세라닙 임상결과에 대해 어떤 전문가도 반대주장을 펴지 않았는데, 금융당국에게 조언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은 어디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진 회장도 직원들에게 발송한 인트라넷 메시지를 통해 “아쉬운 점은 언론을 통해 거론되는 워딩이 ‘허위공시’이다 보니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집단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사실에 대한 최종 결론은 절차에 따라 언젠가는 내려질 것이고,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것은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년 전 셀트리온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폭락했다면 이번엔 에이치엘비가 허위공시 의혹으로 급락했습니다. 두 사례 모두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지만 공매도 세력들은 저렴하게 매수할 기회를 얻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이 공매도 세력을 지키기 위해 개인투자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관피아’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박경보 기자 p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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