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에겐 이 아빠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때 조건도 그러했다는 점을 잘 이해시켜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긍지를 불어넣어 주시오. 앞으로 살아갈 식구를 위해 할 말은 못하고 말았지만 세상이 다 알게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가정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게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의연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
두딸에게
"아빠가 없다고 절대로 기 죽지 말고 전처럼 매사 떳떳하게 지내라.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자라나는 동안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의 지도를 받고 양육되겠지만 결국 너희 자신은 커서 독립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독립 정신을 굳게 가져야 한다. 조금 더 철이 들 무렵이나 어른이 된 후에도 공연히 마음이 약해 지거나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헤쳐나가려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겠느냐. 자기 판단에 의해 선택하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게 되어 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사형집행전 유언
내 조국 대한민국은 희망있는 국가요 또한 그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대업은 조국통일이며 조국통일에 목적이 있는한 우리 국민은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번 시련도 온 국민이 수천년에 걸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처리해온 위대한 민족혼을 발휘하여 서로 믿고 존중하며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단결하여 온 국민이 더욱 기쁜 마음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고락을 같이 하면서 이번 기회를 새로운 번영의 터전으로 삼아주길 빈다. 강한 성위요, 방패와 병기가 되신 주님께서 나를 키워주고 오늘 이 날 이 때까지 품어준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그 강한 오른팔로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서 간성으로서의 소금의 직분을 다할 것을 믿습니다.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잘 길러서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염려해주시고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사형직전 눈가리개를 거부했고 참석자를 무심하게 쳐다봤다는
내용이...
육군대령 박흥주와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는 두딸입니다
자기 목숨 걸고 투쟁한 이들이 있었기에 당신들이 말도 안되는 구호를 외치는 자유가 생긴거다.
나이를 먹으면 나도 저들처럼 생각이 외골수가 될지 일찍 죽는거보다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노인이 될까 그것이 두렵다.
-_-)
-_-)
자기 목숨 걸고 투쟁한 이들이 있었기에 당신들이 말도 안되는 구호를 외치는 자유가 생긴거다.
나이를 먹으면 나도 저들처럼 생각이 외골수가 될지 일찍 죽는거보다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노인이 될까 그것이 두렵다.
쳐먹다=쳐서(때려서) 막 먹다
처먹다=먹다를 좀 더 상스럽게 낮추어 표현
예시) 이 벌레같은 시키야 라면 좀 그만 처먹고 밖에 좀 나가.
어떤 의도로 쓰신건지는 알겠는데 ..
'닭튀김싫어'님한테 하는 말로 되버렸네요
댓글에 '내'가 나이를 먹으면 이라서 주체는 글쓴이 입니다
상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거죠
모조리...
아가리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니가 민주주의를 위해 뭐라두 하나 한게 앴긴 았냐?
니가 지금 아가리 터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맞긴 하냐?
대가리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가리가 깨지면
대가리가 병신인 환자란다
영면하시옵소서 대령님
원글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freeb&No=1925835&rtn=%2Fmycommunity%3Fcid%3Db3BocWVvcGhxZ29waHFwb3BocWZvcGhxZW9waHF0b3BocWdvcGhzam9waHNlb3Boc21vcGhzbA%3D%3D
큰 딸이 저하고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참고로 두 따님 모두 잘 살고 있습니다. 사립초등학교라서 동창이 많지도 않고 요즘도 동창회 하니까요. H대 사립초등학교였는데 잘살던 친구들이 많긴했지만 저처럼 초등학교 인근에 살았던 집에서도 힘들게 다니긴했으니까요. 생각해보니 또 다른 동기 중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손자도 있었네요.
어쩌다보니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10.26과 12.12와 밀접했던 동창들과 같은 학교를 다녔었네요. 당시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학교를 오가는데 H대학교를 지날 수 밖에 없었던지라 장갑차와 군인들이 포진해있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네요.
그러게요. 어느분 딸인데요 !!
사형 안할수도 없고
참 안타까운 역사내요
저놈들 모의 안해씀 박정희대통령각하 아직 살아계실듯..눈물나고 가슴아품니다..
또롸이도 아니고 정신머리가....
그러고 살고싶냐???
부인과 자녀들 그동안 고통속에서 살아온 나날들을 보상해줄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못나오게 막는건지 ㅋㅋㅋㅋ
대머리 십딱구리 전제산39만원 새끼보다 수천배 진짜 군인처럼 생기심
그러면 광주항쟁도 업었을 것을 너무안타깝다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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