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장에게 경계 책임을 무는 것과 북괴 옹호가 무슨 연관 관계가 있소? 북괴의 만행이 맞다면 그 얕은 수심에서 침투해 오는 북괴 잠수함을 전혀 포착못하고 낡은 어뢰 한발에 침몰된 결과에 대해선 함장이 도의적 책임이라도 져야지. 무슨 구국의 영웅마냥 정치적 발언이나 해대고...부끄러운줄 알아야지.
홍범도는 1921년 6월 28일 소련군이 독립군 700명 이상을 학살한 자유시 참변의 소련군 협조범 겸 주동범이다. 홍범도는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1회 극동인민대표대회에 한인대표 56명의 일원으로 선출되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대회가 끝난 2월 초 홍범도는 한인 무장세력(고려혁명군) 대표 자격으로 레닌·트로츠키와 면담했다. 레닌은 홍범도에게 혁명정권에 협조해준 감사의 표시로서 금화 100루블, 군복 한 벌, 홍범도 이름을 새긴 권총을 선물로 줬다(장세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역사공간 2017년 221~223쪽). 자유시참변 이후 홍범도는 휘하 병력 300명을 소련 적군에 편입시켰고 자신은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 대위로 편입됐다. 홍범도는 장군이 아니라 소련군 대위였다. 1945년 8월 29일 소련군 대위로 입북한 김일성과 흡사하다. 홍범도는 1923년 소련군 대위로 제대했고 1937년 스탈린의 악명높은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추방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옮겼으며 극장의 수위로 지내다가 1943년 10월 25일 사망했다.
@한머루
1.자유시 참변과 홍범도의 책임: 자유시 참변(1921년 6월 28일)은 소련 적군과 한인 독립군 간의 충돌로, 수백 명의 독립군이 희생된 사건이다. 하지만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의 주동자이자 협조범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당시 상황은 매우 복잡했으며, 홍범도를 비롯한 한인 지도자들은 소련의 공산정권과의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홍범도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 기록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상황 속에서 적극적인 조정을 시도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2.레닌과의 면담 및 선물: 홍범도가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다는사실은 다양한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와 함께 레닌이 홍범도에게 금화와 군복, 권총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물이 홍범도가 소련 정권에 협조한 것에 대한 대가로 주어졌다는 해석은 과장된 주장이다. 이 선물은 홍범도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소련군 대위로서의 홍범도: 홍범도가 소련군에 편입되었고, 대위로 복무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장군이 아니라 대위였다"는 표현으로 그의 독립운동 공로를 폄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홍범도는 이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며, 그의 직책이 소련군에서 대위였다고 해서 그가 장군으로서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4.김일성과의 비교: 홍범도를 김일성과 비교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부적절한 비교이다. 홍범도는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에 맞서 싸웠으며, 그의 소련군 복무는 당시 독립군의 활동 영역이 소련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반면 김일성은 후에 북한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며, 두 사람의 행보는 매우 다르다.
5.홍범도의 말년: 홍범도는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었고, 이후 극장의 수위로 일하다 1943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포기했거나, 소련에 전적으로 협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홍범도는 끝까지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예를 지키며 살아갔다.
따라서, 위 글은 사실을 일부 왜곡하거나 특정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홍범도의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와 역사적 역활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머루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끈 독립군 지도자이다. 그의 전투 지휘 능력은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소련으로 망명한 후 적군에 편입된 것은 당시 국제 정세와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으며, 이를 두고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를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홍범도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홍범도를 단순히 "적군 대위"로만 규정하고 그의 현충원 안장을 모독으로 보는 주장은 그의 역사적 공로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홍범도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로서 당당히 평가받아야 하며, 그의 현충원 안장은 그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정당한 조치였다.
군사망사고의 수사권 없는 해병수사단장 박정훈이 채상병 사망사고 인지통보서에 임성근 사단장 포함한 8명을 피의자로 기재해 경찰로 이첩하려던 일탈 행동은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과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1항을 명백히 위반하는 월권행위입니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군사망사고의 경우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 별지서식 5호 인지통보서의 피의자를 적시하지 않고 사건 전부를 경찰에 이첩해야 합니다. 박정훈의 위법한 월권행위를 제지하고 보류한 국방부의 대처는 정당합니다. 무능력한 국방장관이 수사보고서에 잘못 서명하여 지휘체계를 무너뜨렸다면 국군통수권자(3군사령관) 대통령의 개입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야당은 지휘체계의 혼란을 질타하고 시정한 3군사령관 대통령의 개입을 외압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박정훈은 정당한 국방부의 지시를 외압이라고 왜곡하며 일부 악덕 정치권과 결탁하여 선동했습니다. 정치개입이 엄격히 금지된 현역군인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명백한 항명이며 정치행위입니다.
@한머루
위 주장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행위가 군사법을 위반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국방부와 대통령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박정훈을 항명과 정치행위를 한 인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법적, 절차적, 그리고 윤리적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1.박정훈의 수사 행위와 군사법원법: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면서 임성근 사단장 등을 피의자로 기재하고 경찰에 이첩하려 한 행위가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과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1항"을 위반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박정훈 단장이 가해자를 특정하여 피의자로 기재한 것은 명백한 범죄혐의가 존재한다고 판단한 결과일 수 있으며, 수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수사절차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특히,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에 따라 사망 사건의 수사는 경찰로 이첩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박정훈 단장이 피의자를 특정하고 이를 경찰로 이첩하려 한 것은 월권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절차를 따른것이다.
2.피의자 기재 여부와 사건 이첩: 주장은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군 사망사고의 경우 피의자를 기재하지 않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고 하지만, 해당 사건에서 박정훈 단장이 가해자를 특정한 것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와 상황을 바탕으로 한 판단일 수 있다. 이는 그가 수사 과정에서 법적 판단을 내리고, 이를 경찰 수사로 이첩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를 명시한 것이며, 이는 수사관의 재량권과 관련된 문제이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경우에만 피의자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항상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명백한 혐의가 있을 경우 피의자를 특정하는 것은 수사관의 역할이다.
3.국방부의 개입과 정당성: 국방부가 박정훈 단장의 수사 행위를 제지한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방부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군 내부에서 수사 절차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를 무조건 정당화하기에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국방부가 특정 인물을 보호하거나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수사에 대한 독립성과 공정성이 중요할 때,국방부의 개입은 외압으로 해석될수 있다.
@한머루
4.대통령의 개입과 외압 문제: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그의 권한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개입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이는 외압이다. 특히 군 내부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군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개입이 정당한 지휘체계 정비가 아니라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외압이었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다. 야당이 이를 외압으로 규정한 것은 대통령의 개입이 수사 절차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며, 이는 적절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5.박정훈의 항명과 정치적 왜곡 주장: 박정훈 단장이 외압을 주장한 것은 그가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간섭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 상급자의 부당한 개입이나 외부의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면, 이를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수사관으로서의 정당한 행위이다. 이를 단순히 항명으로 치부하고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박정훈의 행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또한, 박정훈이 일부 정치권과 결탁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증거 없이 이루어진 주장이며, 이를 입증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단순히 정치적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결론적으로, 위 글에서 주장하는 박정훈의 월권과 국방부 및 대통령의 개입의 정당성 주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박정훈 단장이 피의자를 기재하고 사건을 이첩하려 한 것은 수사 절차의 일부이며, 국방부와 대통령의 개입이 수사 절차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무조건적인 월권이나 항명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 무식한 해석이며,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다.
2번찍 게시벨리안 허스끼 그레이색이야
저도 생각하면 눈물이 부모님심정이 오죽하실까
2번찍 게시벨리안 허스끼 그레이색이야
저도 생각하면 눈물이 부모님심정이 오죽하실까
현충원에 모셨을때 다녀왔는데
주말에 다같이 한번 다녀오려구요
사단장 해병대사령관 보다 김흥국 존나 욕 나옵니다.
흥국아.!!! 니가 말한 해병대가 이런거냐??????
젊은 청춘이 죽었는데 좌파 우파가 무슨 상관이냐????
대한민국의 청년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저는 시력이 안좋아서 해병대는 못갔는데
여튼 임채무 선배님은 두리랜드 갈적마다 악수하고 고교후배라고 하니 더 반겨주셔서 같이 사진도 찍었었죠.
김흥국이는 언급할 가치도 없어서 c8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들이
북한놈들 손에 목숨을 잃은것도 슬펐지만
그런 북한을 옹호하며
오히러 희생자들에게
경계 실패 책임을 물어야 된다며
자국민이 2차 가해를 하는거 보고
더욱더 슬펐네요
가증스런 친북국민들덕에 정은이 좋아하겟어
국군의 학살은 끝까지 파헤치고 인민군과 완장찬 종놈들이 죽창으로 학살한것은 입쳐다무는 좌파 새끼들..
현실은 태극기 경례도 거부.
좋겠다 니들이 원하는 일제강점기 시즌2 보게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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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 최종방문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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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짐당은 우익. 민주당 보수
매번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전시장 무기들 구경만 하고는 떠났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다음엔 우리 채병장과 홍범도장군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채상병 어머님은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실까 ㅠ.ㅠ
애들한테
세월호는 가르치고 천안함은 안가르침
518은 가르치고 부마항쟁은 안가르침
시험관으로 가졌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 안타깝고 일부해병대는 특검반대까지
어이없죠
그래갖고 1700 원 벌겠어?
살아계시는 유공자들한테나 잘해지...
뜬금없는 아프리카에 후원하지말고
1.자유시 참변과 홍범도의 책임: 자유시 참변(1921년 6월 28일)은 소련 적군과 한인 독립군 간의 충돌로, 수백 명의 독립군이 희생된 사건이다. 하지만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의 주동자이자 협조범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당시 상황은 매우 복잡했으며, 홍범도를 비롯한 한인 지도자들은 소련의 공산정권과의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홍범도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 기록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상황 속에서 적극적인 조정을 시도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2.레닌과의 면담 및 선물: 홍범도가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다는사실은 다양한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와 함께 레닌이 홍범도에게 금화와 군복, 권총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물이 홍범도가 소련 정권에 협조한 것에 대한 대가로 주어졌다는 해석은 과장된 주장이다. 이 선물은 홍범도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소련군 대위로서의 홍범도: 홍범도가 소련군에 편입되었고, 대위로 복무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장군이 아니라 대위였다"는 표현으로 그의 독립운동 공로를 폄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홍범도는 이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며, 그의 직책이 소련군에서 대위였다고 해서 그가 장군으로서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4.김일성과의 비교: 홍범도를 김일성과 비교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부적절한 비교이다. 홍범도는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에 맞서 싸웠으며, 그의 소련군 복무는 당시 독립군의 활동 영역이 소련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반면 김일성은 후에 북한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며, 두 사람의 행보는 매우 다르다.
5.홍범도의 말년: 홍범도는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었고, 이후 극장의 수위로 일하다 1943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포기했거나, 소련에 전적으로 협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홍범도는 끝까지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예를 지키며 살아갔다.
따라서, 위 글은 사실을 일부 왜곡하거나 특정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홍범도의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와 역사적 역활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끈 독립군 지도자이다. 그의 전투 지휘 능력은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소련으로 망명한 후 적군에 편입된 것은 당시 국제 정세와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으며, 이를 두고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를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홍범도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홍범도를 단순히 "적군 대위"로만 규정하고 그의 현충원 안장을 모독으로 보는 주장은 그의 역사적 공로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홍범도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로서 당당히 평가받아야 하며, 그의 현충원 안장은 그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정당한 조치였다.
여긴 원래 그런 곳입니다 ㅋㅋㅋㅋ
보배드림식 사고를 좀 하세요
정상인은 여기서 환영받을 수 없어요 ㅋㅋㅋ
보배드림식 객관성 좀 탑재하시죠
천공 주욱순 건진 전광후니 신천지 찬동자가 여긴 어인일로 납셨나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고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으려한다
박정희는 이승만에 대해 노인,이승만씨 등으로 격하하여 표현함
이승만은 48년 8월 15일을 인정한 적이 없다
위 주장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행위가 군사법을 위반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국방부와 대통령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박정훈을 항명과 정치행위를 한 인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법적, 절차적, 그리고 윤리적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1.박정훈의 수사 행위와 군사법원법: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면서 임성근 사단장 등을 피의자로 기재하고 경찰에 이첩하려 한 행위가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과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1항"을 위반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박정훈 단장이 가해자를 특정하여 피의자로 기재한 것은 명백한 범죄혐의가 존재한다고 판단한 결과일 수 있으며, 수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수사절차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특히,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에 따라 사망 사건의 수사는 경찰로 이첩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박정훈 단장이 피의자를 특정하고 이를 경찰로 이첩하려 한 것은 월권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절차를 따른것이다.
2.피의자 기재 여부와 사건 이첩: 주장은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군 사망사고의 경우 피의자를 기재하지 않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고 하지만, 해당 사건에서 박정훈 단장이 가해자를 특정한 것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와 상황을 바탕으로 한 판단일 수 있다. 이는 그가 수사 과정에서 법적 판단을 내리고, 이를 경찰 수사로 이첩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를 명시한 것이며, 이는 수사관의 재량권과 관련된 문제이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경우에만 피의자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항상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명백한 혐의가 있을 경우 피의자를 특정하는 것은 수사관의 역할이다.
3.국방부의 개입과 정당성: 국방부가 박정훈 단장의 수사 행위를 제지한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방부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군 내부에서 수사 절차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를 무조건 정당화하기에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국방부가 특정 인물을 보호하거나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수사에 대한 독립성과 공정성이 중요할 때,국방부의 개입은 외압으로 해석될수 있다.
4.대통령의 개입과 외압 문제: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그의 권한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개입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이는 외압이다. 특히 군 내부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군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개입이 정당한 지휘체계 정비가 아니라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외압이었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다. 야당이 이를 외압으로 규정한 것은 대통령의 개입이 수사 절차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며, 이는 적절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5.박정훈의 항명과 정치적 왜곡 주장: 박정훈 단장이 외압을 주장한 것은 그가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간섭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 상급자의 부당한 개입이나 외부의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면, 이를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수사관으로서의 정당한 행위이다. 이를 단순히 항명으로 치부하고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박정훈의 행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또한, 박정훈이 일부 정치권과 결탁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증거 없이 이루어진 주장이며, 이를 입증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단순히 정치적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결론적으로, 위 글에서 주장하는 박정훈의 월권과 국방부 및 대통령의 개입의 정당성 주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박정훈 단장이 피의자를 기재하고 사건을 이첩하려 한 것은 수사 절차의 일부이며, 국방부와 대통령의 개입이 수사 절차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무조건적인 월권이나 항명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 무식한 해석이며,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다.
눈물 흘리는 사진올리든가
남로당 전향자 출신 박과 친척인 박상희 그의 친구 황모시기는 북한 고위직출신이다.
어디 외국이 죽었어? 벌레새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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