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때 그 엽기남, 마약동아리 회장으로 돌아오다
온라인 | 24.08.09 13:46
‘BDSM 커뮤니티의 비극’ 본지 보도 사건 가해자, ‘명문대 마약’ 동아리 회장과 동일 인물로 드러나
[일요신문] 2021년 일요신문은 ‘초대남 우르르 “그만” 외쳤지만…국내 최대 BDSM 커뮤니티의 비극’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가해자인 염 아무개 씨가 알몸과 신분증을 촬영한 뒤 협박해 여성에게 ‘성노예’라고 적힌 문신을 새기고 그룹 플레이를 강요했고 이를 돈벌이로 삼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인지 커뮤니티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지라시판이냐. 쓰레기 기자의 50가지 헛소리’, ‘기자의 뇌내망상 남혐 기사다’ 등 사실일 리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서울대·고려대·카이스트 연루 마약 동아리 주범이 과거 피해자 여러 명을 양산한 가해자와 동일 인물임이 드러났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최근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생 A 씨가 만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이 포함된 명문대 동아리에서 마약 투약·유통 및 집단 성관계 사건이 적발돼 사회적 충격을 줬다. 그런데 최근 본지 취재에 따르면 2021년 보도된 가해자 염 씨와 카이스트 대학원생 A 씨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피해자들 측면에서 이번 염 씨 사건을 재조명해 봤다.
피해자들 얘기와 염 씨가 벌인 행각에 대한 취재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염 씨는 아라곤왕국이란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아라곤왕국은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에 있었던 중세와 근세 시대의 왕국 이름이지만 커뮤니티 사이트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아라곤왕국은 BDSM(가학·피학 성애) 커뮤니티로 한국 내에서 가장 큰 규모다.
‘국내 최대 BDSM 커뮤니티의 비극’ 기사에 보도된 피해자 B 씨가 염 씨를 만난 건 아라곤왕국에서였다. B 씨는 염 씨를 ‘얼굴도 곱상하고 명문대를 다니며 슈퍼카를 몰면서 재력을 과시했다’고 기억한다. B 씨는 마조히스트였고 염 씨는 사디스트였다. 2021년 보도한 바와 같이 그는 일상적 관계에서도 사디스트적 행동을 하며, ‘주인님’으로 군림했다.
염 씨는 나이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염 씨는 93년생으로 추정되지만, 주변에는 다섯 살 이상 어린 것으로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피해자는 염 씨가 주민등록증 나이를 고쳐, 속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했다.
염 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대학을 다니다 휴학했다가 2020년 제적당했다. 5일 카이스트는 “염 씨가 이미 2020년 제적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염 씨는 연세대 재학 당시 투자학회에서 활동했다. 2020년 염 씨를 만난 피해자는 ‘염 씨가 선물·옵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염 씨는 가상자산(코인)에도 관심을 가졌는지 ‘크립토 갓’(Crypto God)이란 이름의 트위터 계정 등으로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주 수입원은 다른 곳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2023년 염 씨를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염 씨는 2021년 4월 30일과 5월 1일, 2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20대 여성 C 씨와 다수 남성의 집단 성행위 현장을 마련하고, 남성들에게 참가비로 5만 원에서 4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재판부는 염 씨와 C 씨가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집단 성행위를 진행하고 참가자를 모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전해진다.
재판부와 직접 이 모임 참여를 강요받았던 피해자들 말은 다르다. 2021년 피해자 A 씨 그리고 A 씨와 연락이 닿은 피해자들에 따르면 염 씨가 주도했던 여성과 다수 남성 간 집단 성행위는 염 씨의 주 수입원이었다. 염 씨는 주말마다 잠실역, 고속버스터미널역 인근의 유명 호텔 방을 빌려 몇 차례나 이런 모임을 운영했다.
트위터에 염 씨는 “서울 5성급 호텔 중 객실 여러 개를 잡고 진행한다’, ‘성인용품들은 새것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렇지만 피해자 말에 따르면 방을 잡고 하루에 2회 이상, 한 번에 5명 이상씩 들어가기 때문에 비용보다 수익이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원생임에도 슈퍼카 등을 몰고 다니며 부를 과시했다.
염 씨는 이런 모임에 아마추어 사진기사도 불러 당시 모습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 사진과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촉한 남성들에게 판매한 정황도 있다. 이것도 염 씨의 또 다른 수입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염 씨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이 확보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2021년 당시 피해자 A 씨는 “9월부터 12월까지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두 타임으로 오후 6시와 자정에 남성이 5명 이상씩 계속 들어왔고 하혈하는데도 계속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초대돼 왔던 남자가 “이게 정상적인 거냐”고 염 씨에게 물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염 씨는 가스라이팅으로 정신을 지배하려 했을 뿐 아니라 여성을 폭행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염 씨가 A 씨의 눈을 가리고 갑자기 여러 남성을 등장시켜 관계를 맺게 한 뒤 “너는 어린 나이에 남자관계가 10명이 넘었다. 문란한 여성이다”라고 말한 뒤 “나는 그래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성관계 영상, 자위 영상 등을 찍게 하고 이를 ‘가족에게 보내겠다’,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도 했다고 한다. 성관계를 거부하면 폭행을 해 A 씨가 하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염 씨는 초대남을 불러 모은 어느 날 A 씨가 관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초대남이 말릴 정도였고, 호텔 옆방에서 신고가 들어가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A 씨가 염 씨와 합의하면서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그럼에도 염 씨가 했던 죄가 반의사 불벌죄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수사가 계속되면 과거 그가 했던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다만 A 씨 등 피해자는 염 씨를 만나기 싫어해 합의금 상당액을 포기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워낙 심한 상태다. A 씨 지인은 “염 씨 사건을 다시 고소해 제대로 처벌받게 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다시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진저리를 칠 정도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77010
초대남 우르르 “그만” 외쳤지만…국내 최대 BDSM 커뮤니티의 비극
[제1521호] | 21.06.29 16:53
알몸+신분증 촬영 후 협박 ‘성노예’ 문신, 그룹 플레이 강요 돈벌이…피해자 여럿 증거 부족·합의로 끝나
[일요신문] 최근 국내 최대 BDSM(가학·피학 성애) 커뮤니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상성욕자'들의 모임에서 생긴 일을 추적했다.
지난 6월 초 C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C 변호사는 “너무 심각한 사건을 수임하게 됐다. 기사화를 통해 공론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6월 19일 갓 스무 살을 넘긴 여성 피해자 A 씨를 변호사 동석 하에 서울 정동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A 씨는 나이나 당한 사건을 고려해봤을 때 상당히 논리적으로 얘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심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자 입에서도 "악마"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피해자 A 씨는 BDSM 커뮤니티에서 2020년 5월 남성 B 씨를 만났다. A 씨는 B 씨를 만나기 전 이 커뮤니티에서 2번 정도 더 남자를 만난 바 있었고 2번 다 짧게 만나다 헤어졌다. 그런데 B 씨는 달랐다. B 씨는 얼굴도 곱상하고 명문대를 다니며 슈퍼카를 몰면서 재력을 과시했다. 곧 A 씨는 B 씨에게 빠지게 됐다. A 씨는 마조히스트(피학성애자)고 B 씨는 사디스트(가학성애자)였다.
사귀고 한두 달까지 둘 사이는 원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B 씨가 관계 전 A 씨 눈을 가리더니 갑자기 여러 명을 등장시키면서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A 씨는 저항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행동은 A 씨의 명백한 거부에도 몇 차례 반복됐다.
심지어 세이프워드(피가학자가 진정으로 중단하고 싶을 때 외치는 단어)를 외쳐도 B 씨는 무시하고 중단하지 않았다. BDSM은 약속된 플레이지만 때리거나 목을 조르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세이프워드를 외쳤을 때에는 무조건 중단해야 한다는 절대적 규칙이 있다.
A 씨는 관계가 끝난 뒤 구두로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다. 하지만 8월 말 관계 도중 B 씨가 A 씨 몸 위에 사원증과 신분증을 올려두고 강제 촬영을 했다. 그때 A 씨는 “다 끝났다. 내 인생은 저놈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체념했다고 한다. A 씨는 유포를 걱정했고 B 씨는 은근히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B 씨의 플레이는 점점 더 수위가 높아져 갔다. 이상성욕자들의 모임 사이트에서 사람들을 모집해 서울 한 호텔에서 집단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A 씨는 거부하지 못한 채 끌려가던 관성대로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B 씨는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이상한 주문을 내렸다. B 씨는 A 씨에게 “45kg까지 감량 못하면 타투나 피어싱을 해야 해”라고 말했고, 달성될 수 없는 목표에 결국 실패한 A 씨는 타투를 해야 했다. A 씨는 타투만큼은 끝까지 거부하려 했지만 B 씨가 “영상을 뿌리겠다”는 뉘앙스로 말해 어쩔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내 인생은 어차피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B 씨는 성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학성을 드러냈다.
2020년 9월 B 씨는 경기도 소재 한 도시에 위치한 빌딩으로 A 씨를 불러냈다. 그 빌딩 앞에서 B 씨는 A 씨에게 안대를 씌웠다. 타투 시술소가 어딘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A 씨는 그렇게 눈을 가리고 타투를 받았다. 타투는 대문짝만 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영어로 적혔다. 해석하자면 ‘성노예, 주인 B 씨’라는 뜻이었다. A 씨는 나중에 이 문신을 확인하고 좌절했다. 결국, 12월이 돼서 A 씨는 잠적을 하고 B 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일종의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B 씨는 집요하게 협박조로 A 씨에게 연락했고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났다. A 씨는 호텔에서 이뤄지는 집단 성관계 만남에도 나가야 했다. 주말은 통째로 그 모임에 나가는데 써야 했다. 그러다 지난 5월 몸이 매우 좋지 않던 A 씨가 울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속칭 ‘초대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부하는 A 씨를 B 씨가 말 그대로 흠씬 두들겨 팼다. 그 자리에서 한 초대남이 ‘이건 아닌 거 같다’면서 A 씨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번호를 건넸다.
연락이 된 초대남은 ‘그 모임은 돈을 주고 나가는 곳’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A 씨는 좋아하는 B 씨의 성향 때문에 열리는 모임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B 씨는 과거 여자들을 모임에 내보내면서 남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부를 축적해온 것이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초대남은 A 씨 사연을 듣더니 ‘소송 등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양심 있는 초대남의 조언 덕분에 A 씨는 그제야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B 씨는 철저했다. 읽으면 30초 만에 사라지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사용했다. A 씨는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른 휴대전화로 텔레그램 메시지를 영상 촬영하면서 증거를 수집했다. 결국 A 씨는 5월 말 최소한의 증거를 모았고 고소를 진행했다. 알고 보니 피해자도 여럿 있었다. A 씨는 “나와 같은 혐오스러운 문신을 한 사람이 최소 3명이다. 그 가운데 고소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지만, 증거 부족으로 B 씨가 빠져나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6월 고소 사실을 안 B 씨는 기세등등했다. B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씨 증거는 거짓이다. 오히려 A 씨 말을 뒤집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내게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당시까지는 A 씨가 확보한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A 씨는 C 변호사 도움으로 증거를 정리해 추가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장을 본 B 씨는 A 씨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최근 ‘n번방 방지법’ 등으로 B 씨가 한 범죄혐의 등은 ‘상해’, ‘강간’, ‘성폭력법 위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었다. B 씨 아버지도 A 씨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다. B 씨 아버지는 한 기업체 임원이다.
이들은 합의를 요청했다. 문제는 A 씨 집안이 무척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B 씨 측은 ‘감방 보내는 것보다 돈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결국 A 씨는 ‘동생만큼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합의금에 사인했다. 고소는 취하되고 결국 B 씨는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C 변호사는 “A 씨 집안 문제로 인해 최소한의 피해 보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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