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고시가 없어 지면서... 가난한 사람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출세 할 수 있는 길중의 하나가 사라젔죠.
이젠 의사도 그렇게 되겠네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때... 학용품 살 천원이 없어 어머니께서,,,, 옆집에 가서 한참 애기하고천원 빌려다가 주시던게...
아직도 생생 하네요...
1년에 이사 3번하고..... 단칸방에 6가족 살고...
진짜 내가 살건 이거 밖에 없다고 생각 하고 공부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의대 가서..... 학비는 전부 대출로.... 다행이 의대생이라고 하니.. 예과때는 저축은행에서 빌려 주고..
본과때는 정부 학자금 대출이라는 게 생겨 좀더 저리로 대출이 되더라구요,
촐업후... 전공의 노예 생활하며 그나마 받은 돈 4년간 전부 대출 갚고 동생 대학 등록금.. 등등으로 전부 월급날 전액
이체하고 살았죠..
어차피 당시 외과 전공의는 병원에서 나가 잠을 잔다는건 휴가 이외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라..
수술실 복도.. 탈의실 땅바닥.. 등등에서 하루에 3- 4 시간 기절하며 잤고,,
밥은 병원밥.. 등등으로 해결 가능했죠,
외과 4년차 되고 치프가 되니... 드디어 수면 시간이 좀 늘어 나고,.... 동생도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하면서... 월급의 일부를 제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전히 돈쓸 시간 자체가 없으니 전액 그대로 모이게 되고...
전문의 취득하며 공보의 가면서 꿈에 그리던 첫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800만원 이라는 후덜덜한 금액을 지불하며 구매한 황금색 그랜저 XG...
/고등학생때.. 휘황 찬란한 황금색 그랜저 XG를 하교하면서 보고나서 형에게
황금차를 봤다고 형에게 흥분해서 말하며 언젠간 저차를 타고 말겠다고.... 이야기 하곤 했던.... 바로 그차 였죠
공보의 시절 나의 발이 되어주고..무엇인가.. 온전히 내 소유했던 첫번째. 내 물건...
거의 15년간 오랫동안 아껴주었고.. 하체 부식으로 말미 암아 안전 문제로 폐차장 보내던날.... 무던히도
울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쪽 바닷가에서 38개월간의 지역 공중보건 전문의로 복무 (?) 후 세부 전문의 위해
다시 펠노예의 삶이 시작 되더군요
교수님께 욕처먹고..... 이름만 교수라는 명찰 달고 논문부터 환자 진료 수술까지.....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해서
아침 7시 컨퍼런스.. 아침 수술 진료 준비 하고.. 하루 종일 수술 하다가... 밤에 나와서.... 논문 준비 하고..
밤 11시에 퇴근... 그러다 늦어지면 그냥 라꾸 라꾸로 몸을 누이는 날이 일주일에 2-3회.. .. .......
근데 그래도 전공의 보다 나은것은 .. 일요일은 출근 안해도 됬어요..... 대신 월요일 논문 준비 발표가 매주 있어서 집에서
밤새기는 했지만..
펠로우때 결혼했더니 와이프가 일주일에 3일을 집에 안들어오니.. 뭔 의대 교수가...
( 펠노예지만 명찰에는 교수라고 ,,,,,써있죠,,,ㅎㅎ ) 이모냥이냐고 경악......
그 와중에 첫째 태어난건.....그야 말로 자연의 섭리^^
그러면서 펠노예 2년 보내고 나서... 세부 전문의 취득후
지역 종합 병원에서 일 시작하니... 내나이. 37살에 처음으로 온전한 직장 생활과 사회 생활이 시작 되더라구요
정말 진정으로 환자 돌보고... 내가 수술한 환자 보러 토요일도 일요일도 출근해서 회진 돌고, 그래야 내 마음이
안심이 되고..
정말 안좋은 환자가 회복되서 퇴원하면 그야말로 기쁨이 가득하고..
그렇게 노렸했는데... 결국 안좋아 저서 CPR 치다가 손내려 놓을때는 무력감에 손이 떨리고...
말기 암환자... 살려 보려 노력하다가 결국 돌아 가셨을때... 의사 탓으로 돌리며
내 개인 번호로 무려 4년동안 이나 주기적으로 전화 해서 욕하고 저주하고..... ( 전 환자분께
궁금하면 물어 보라고 개인 전화 번호 종종 알려 드립니다. .)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고생하면서 죽어라면서 울면서 저주할땐...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전화 차단도 하지 않고
4년간 계속 이야기 들어주고 저주 들어 드렸는데요.. 그렇다고 상처가 안되는 건 아니었나 봐요
어느날은 그이야를 듣다가 제가 정신이 혼미해 지고.. 오심 구토를 하면서 전화 끊어 진적이 있었죠..
와이프가 그제서야 실상을 알고 경악하며 전화번호 차단하고 그만 받으라고 해서.. 그 분 전화는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네요..
환자분들 보면 안타까울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빅5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고 세부 전무의 취득하며 교수 소리 듣던 사람이고 수술 실력으로는 자부하지만
환자분늘 눈에는 그저 지역 병원 의사죠.. 수술이 필요해서 수술 이야기 하면 2/3 이상은 소견서 써달라고 해서
군말 없이 질환 설명만 하고 소견서 써드리고.
어느날은 병원장이 부르더니 어떻게든 본원에서 해결해야지 왜 자꾸 소견서 써주냐고 혼나고....
( 외과는 어차피..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 해도 잘해야 본전 치기고 손해가 십상이라... 월급도 짜고..... 경영진에게
구박받는....^^)
대학 병원도 아님에도 믿고 몸을 맏겨 주시는분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수술하면서 어느덧
나이 40도 중반이 넘었네요.
애들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와이프랑 결혼후 13년 만에 자가도 마련하고.... 오늘도 나를 믿고 몸을 맏겨준
암환자 수술을 하고 나와서 요새 의사 증원으로 말들이 많은데... 문득 생각이 나서 쓰는 글입니다.
그나마 부모에게 받은것 없이. 빈손으로... 공부만으로 사회적 계층의 이동이 가능한 또하나의 수단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엄마 아빠가 부자였던 의대 동기들이 대부분 이지만..
그래도 돈한푼 없던 흙수저를 공부만으로 이정도 살수 있게 만들어 줄수 있던 수단이 뭐가 있었을까요..
(여러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저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분들이 당연히 더 많을테니
여러 댓글 달아 주시는 것은 괜찮은데.....욕만 쓰지 말아 주세요.... 위에 사건 이후로 트라우마가 됬나..
이유 없는 욕을 들으면 몇일간 우울증 비슷한게 와서요... ㅠ,ㅠ)
끝없는 방대한 공부
사람 살리는 일이라 존경했지만
지금 국민 목숨 볼모로 울분 터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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