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7일에 발목의 핀 제거수술을 받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 오늘 글을 올립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날이
1905년 11월 17일이고, 이날이 바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물론 대한제국의 공식 강점은 1910년 8월 29일이지만
사실상 을사늑약을 체결한 날에 대한제국은 망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는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국선열의 날을 정한 주체는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1939년 11월 21일 임시의정원 제31차 임시총회에서 "지청천, 차리석" 등 6분의 독립운동가가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정하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후 임시정부는 가능한 한 을사국치의 날에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단독으로 행사를 갖기도 하고, 현충일 추념식에 포함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지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께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셨던 희산 김승학 선생님의 '한국 독립사(1964) 서문도 함께 올립니다.
희산 김승학 선생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학무국장과 만주 무장항쟁조직이었던 참의부 참의장을 지냈으며,
해방 후 김구 주석으로부터 국내에 군부 설립을 위임받았던 저명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무릇 한 국가를 창건하거나 중흥시키면 시정 최초 유공자에게 후중한 논공행상을 하고
반역자를 엄격하게 의법조치하는 것은 후세자손으로 하여금 유공자의 그 위국충성을 본받게 하고
반역자의 그 죄과와 말로를 경계케 하여 국가주권을 길이 만년 반석 위에 놓고자 함이다.
이 중요한 정치철학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우리나라는 반세기동안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노예가 된 뼈저린 수난 중 광복되어 건국 이래
이 국가 백년대계의 원칙을 소홀히 한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일제의 주구로 독립운동가를 박해하던 민족반역자를 중용하는
광복운동에 헌신하였던 항일투사의 한 사람으로서 전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시정 중
가장 큰 과오이니 후일 지하에 돌아가 수많은 선배와 동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보냐?
이 중대한 실정으로 말미암아 이박사는 집정 10년 동안 많은 항일투사의 울분과 애국지사의 비난의 과녁이 되었었다."
대한민국이 일제에게서 광복이 되고 독립투사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 가슴이 싸해지는 글이네요.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뵈어요.
쾌차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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