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점심 무료’ 식당 주인 위해… 손편지 쓴 6·25용사들
보훈부 장관에 “선행 격려해달라”
입력 2023.11.11. 03:00업데이트 2023.11.11. 11:38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저희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분을 장관님께서 격려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지난달 26일 세종시 정부청사의 국가보훈부에 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박민식 장관 앞으로 온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에는 누군가의 선행을 격려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쓴 이들은 경기 성남에 사는 이학명(93)씨 등 6·25 참전 유공자 5명이었다. 이들이 격려 대상으로 지목한 사람은 지난 3년간 자신들에게 매주 목요일 돼지갈비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음식점 사장 박춘년(73)씨였다.
이씨는 손 편지에서 자신들을 “1951년 육군종합학교 15기 간부 후보 동기생”이라고 소개했다. 소위로 임관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로 흩어진 이들은 30여 년 전쯤부터 산악회를 만들어 교류해왔다고 전했다. 이씨는 “동기 30여 명이 매주 목요일마다 전국의 명산을 다녔지만 10년 전부터는 체력의 한계가 느껴져 성동구 서울숲 인근을 걸어왔다”며 “어느덧 30명 중 25명이 세상을 떠나고 3년 전쯤부터는 다섯 사람만 남게 됐다”고 했다.
이들이 박씨로부터 무료로 갈비 식사를 제공받은 것도 이때였다. 이씨는 “3년 전쯤 사장이 6·25전쟁 당시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을 우연히 본 뒤부터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점심 시간에 손님이 많아 빈자리가 없을 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돼지 갈비 장사를 오후 1시부터 하지만 그전에 가도 갈비를 따로 구워서 내준다”며 “식당에 갈 때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에 기뻤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박씨는 “나라를 지켜준 고마운 어르신들을 당연히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점심 박씨가 운영하는 서울 성동구의 음식점으로 모였다. 음식점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 10여 명이 있었지만, 박씨는 참전 용사들을 위한 식탁을 하나 비워뒀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된장찌개와 멸치조림, 나물 반찬 등이 차례로 식탁 위에 차려졌다. 이들은 “허리 건강은 괜찮으냐” “잠은 잘 잤느냐”며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했다. 검은 앞치마를 입고 참전 용사들을 지켜보던 박씨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살점을 수저에 얹어줬다.
이주성(91)씨는 “고기 값을 빼고 백반 가격이라도 받아달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한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방법으로 여름에는 수박을, 가을에는 곶감이나 김을 싸가서 전해주곤 했다”고 했다. 김재해(93)씨도 “공짜 밥을 먹는 게 미안해서 막걸리 한 잔을 먹고 싶어도 가게에 부담이 될까 참는다”며 “지팡이를 짚고 걸음도 불편한 우리를 살갑게 챙겨주는 게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이들이 앉은 식탁 뒤 벽면에는 붓글씨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박씨는 “서예를 배웠다는 어르신 한 분이 고마우셨던지 가게 번창하라고 ‘천객만래 무궁발전(많은 손님이 와 발전한다)’이라는 붓글씨를 써서 선물로 주셨다”며 “볼 때마다 힘이 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 1999년부터 돼지갈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참전 용사들뿐 아니라 성동구 일대 노인정이나 경기 의왕의 명륜보육원 등에 쌀이나 양념 갈비 등을 주기적으로 기부해오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는 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어르신들이 그저 맛있게 식사하시고 날마다 건강하시기만 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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