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그린시티 업무 시나리오
이제 4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년 싱글입니다.
가끔 개인적 대소사나 자동차 관련으로 질문드릴 때마다 회원님들의 현실적이면서 종종 재치잇는 답변으로 많은 도움 받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만에 월차내고 집에서 쉬는 도중 불연 듯 과거 생각들이 많이 나서 이렇게 갑자기 글을 쓰게 됩니다.
요즘 들어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했던 제약회사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와 공장직원이었던 어미니가 만나서 결혼하여 저와 남동생을 낳으시고 신혼 때 단칸방에서 출발하여 돈이 너무 없어 약간의 저축금과 사채 빚을 얻어 2.5평짜리 약국을 지금의 미아동에 겨우 개업하셨습니다.
당시 개업 초장기 도매상에서 약을 사올 돈이 없어 아는 약국에서 빈 약품박스를 얻어 진열을 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두 분이서 악착같이 월~토요일 8시 오픈~저녁 10시 퇴근의 생활을 반복하시며 7년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 약국일을 하시면서 저와 동생도 정말 열심히 돌봐주셨습니다.
그 사이 빚도 다 갚으시고 작게 나마 지하1층, 지상2층에 작은 별개점포가 딸려있는 건물을 지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87년도 경이네요..새로운 건물에서 약국 오픈 하는 날 부모님 두 분의 감동스러운 얼굴은 지금도 잊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온 가족이 이제는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나 싶던 와중 89년도에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시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비교적 쉽게 치료 될 만한 병세셨지만 그 당시에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1년 6개월후 다시 재발을 하시더군요...그때는 처음보다 더 빠르게 암이 진행되어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기적을 바라며 기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기도원이 하ㅠ?이면 사이비종교 기도원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생활하시면서 중학생이었던 제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기도원에서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매일 아침마다 고름으로 가득 차 있는 상처부위를 소독해드리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결국 버티지 못하시고 기도원 입소 2개월 정도 후 돌아가시더군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께서는 저와 동생을 보살필 방법으로 유모, 파출부 등 여러 방안을 시도하셨지만 어렸던 저 동생은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1년후 아버지는 재가를 하셨습니다.
그 이후 저와 새어머니와는 항상 마찰이 있고 거기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도 트러블이 많았습니다.
나름 학교에서 굥부 좀 한다고 햇던 저 그리고 동생은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막말로 학교에서 노는애들과 어울리며 다니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저는 새어머니와의 심한 다툼을 계기로 20대 초반 분가를 하여 동생과 14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 사이 부모라는 사람들은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저희의 집을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더군요..
동생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고 햇을 때도 맘에 안든다느느 이유로 일체 간섭을 안하더군요..결국 결혼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생과 저는 겨우 들어가게 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규모 토목설계회사, 동생은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네 일식집에서 일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쉽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제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공용화장실을 써야 하는 가설 옥탑방에서 시작하여 일반 빌라로 옮길 때까지 사는 집 전세금과 생활비는 제가 다 책임지면서 살았습니다.
친척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청할 곳도 없이 둘이서 아둥바둥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친구들이 지금와서 참 고맘게 느껴집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어머니를 잃고 제대로 된 가족의 정도 못느끼며 자란 제 동생...
대학 졸업 후에도 다소 방황하며 힘들어하던 제 동생은 지금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하여 조카도 낳고 동네 일식집에서 시작하여 국내 최고호텔 쉐프로 근무하다 얼마 전 사이판 k호텔에 총괄쉐프로 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동생이 떠나고 나니 많이 허전하긴 하네요...
저도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내실있는 설계회사에서 근무 중에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남에게 폐 안끼치며 성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었습니다..
이제는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작년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셔서 뇌를 다치어 인지능력을 상당부분 잃으신 상태입니다. 사고 난 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간병인의 도움하에 재활치료중이십니다. 연로하신 새어머니도 거의 매일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간병을 도우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하고 미워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병원에 게신 아버지를 뵈면
......그냥 너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어찌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얼마 전 잠깐의 부주의로 중과실 교통사고에 연루되어 현재까지도 사건이 진행중입니다. (음주, 무면허, 뺑소니는 아닙니다)
집안 유전 내력으로 내려오는 시력저하문제로 노안과 겹쳐 시력도 조금씩 일반인보다 안좋아지고 있고요..
저보다 더 힘든 삶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사시는 회원님들도 많이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요즘은 심적으로 참 많이 어렵네요..
안 되는 인생은 안 되는 건가...이게 운명인가..너무나 맣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갑니다.
그래도 다시 맘을 부여잡고 생활해야겠지만.....그냥 너무 지치네요..
급하게 작성한지라 오타가 있으면 양해 부탁드려요
그 많은 고난과 시련들 중에서
남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 탓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운명이고 팔자려니 하는게 편합니다.
내탓도 아니고 내 능력의 문제도 아닌 것들은 그냥 받아 들이는 거죠.
근데.....좀 힘들고 지치고 그렇죠? 그쵸?
사는것이 의미도 없고 이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죠?
님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님을 위해서 뭐 해준거 없어서 그래요.
항상 님보다 가족이 우선이어서 그래요.
님 자신에게 아무것도 보상을 안해주니까 지쳤을때 의욕이 사라지는 겁니다.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세요.
먹고 싶었던것 하고 싶었던것 아무거나 하나라도 해주세요.
그럴 자격 있잖아요?
그 시기가 지나면 생각을 조절할 줄 아는 요령이 생깁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
하고 지나가세요.
그게 인생입니다.
열심히 사셨습니다.
인생은 지천명부터임니다,,,,힘내시길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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