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경례구호 글이나 군생활 관련 얘기를 보며
저의 경험이 떠올라 한번 끄적여 봅니다.
저는 03군번 입니다.
군번은 일부러 외우려한게 아닌데도 아직 기억하네요.
혹 문제될까 적지는 않겠습니다ㅋ
2002 월드컵의 흥분이 어느정도 잊혀진 2003년 5월 논산으로 입소.
일요일 마다 였나요? 종교행사때가 기억납니다.
평소 절을 좋아했던 터라 불교 행사장으로 갔지요.
다른 기수들이 법당에 행사중이라 앞 공터에서 대기중인데 여기저기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빨간모자들이 쉬는틈을 이용해 각 담당 훈병중 노래 잘하는 훈병을 세워 노래를 시키고 있더라구요.
우리 옆 소대에 한 훈병이 김경호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는데 그걸본 우리 빨간모자가 "저기 김경호 누를수 있는사람" 외치니 다들 한 훈병을 가르킵니다. 쑥스럽게 일어난 모범생같이 생긴 이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기가 막히게 잘 부릅니다.
다른 소대들도 모두 쳐다봅니다.
후에 알고보니 김범수 보컬 트레이너 였다네요.
어쩐지 나이가 많아보이더라니..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외치며 죽어라 뛸때가 가장 힘들었네요.
사격은 20발중 19발 맞춰서 집에 전화도 하고, 행군은 유일하게 싸제 풍경을 보고 민간인도 볼수있어 행복했네요.
그렇게 4주를 보내고 통신병 주특기 받고 306보충대에서 이틀인가 대기후에 자대로 갑니다.
덤프 한대가 와서 저를 포함해 2명을 태워갑니다.
6군단 xxx정보대대로 도착후 동기는 대대에 남고 저는 또다시 차를타고 어디론가 갑니다.
초저녁 어둑해서 도착한 곳은 일명 공x정찰중대(u□v중대 라고도..)
도착하자마자 목욕을 하는데 일반 목욕탕과 똑같습니다.
병사들이 싸제 목욕 바구니를 들고 다니던게 특이했네요.
내무반은 더 놀랬습니다.
깔끔하고 1인1침대에 큰 tv..들어보니 육군에선 두번째로 침대가 보급된 중대라네요.
그렇게 어리둥절한 상태로 저의 자대생활이 시작되었네요.
다음날 아침 중대장께 전입신고를 하고 부대를 한바퀴 돌아보는데 좀 희안합니다.
부대가 활주로네요.
우리 중대 외에도 같은 임무의 x군단, 수x군단, xx사단 정찰대등이 그 비행장 내에 함께 주둔해 있었습니다.
주특기는 통신병인데 행운인지 불행인지 지휘통제실 업무를 맡습니다. 앉아서 편하게 전화받고 컴퓨터하는게 시간이 갈수록 밖에서 작업하는 고참들 눈치가 보여, 담당 장교 허락없이 나가서 같이 작업합니다.
결국 지휘불복종? 으로 완전군장으로 뺑이돕니다.
하지만 그일로 땡보,뺀질이 시선에서는 벗어나게 됩니다.
위에도 언급했듯 모든게 특이한 부대였습니다.
중대인원이 총 60~70명 정도인데 병과 간부의 비율이 1:1 입니다.
저는 그 힘들다는 유격과 혹한기 한번도 하지않고 제대 했습니다.
부대 자체가 그 훈련을 하지 않는건 아닌데 운이 좋은건지 첫해 유격은 자대전입 몇일전에 끝났고 다음해는 대대장 권한으로 우리 중대만 열외되고 그다다음 해는 말년에 지통실 계원이라 빠집니다.
혹한기는 왜 안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자대전입 이틀 후인가 중대장(당시 육사출신 소령)이 저를 부릅니다.
어깨동무 하며 산책을 하며 묻습니다.
"친척중에 군인 계시냐?"
전 먼친척이 군인이란것만 알았지 자세한건 몰랐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아버지가 그분께 아들이 입대했다 하셨고 그분이 나름 힘을 좀 쓰셔서 이 부대로 오게된걸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 중대장에 전화를 하셨고 중대장이 신경쓰는 척은 해야하니 저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이 부대 대부분의 병사들이 그런 줄?이 있었다는^^;
저의 바로 밑 후임은 고모부가 대령이었는데 한날 조용히 왔다가시려 했는지 일요일 사복 차림으로 면회를 왔습니다.
더 웃긴건 15분쯤 뒤에 영외에서 쉬던 중대장이 급하게 복귀했다는..
부대 자체가 수요일 오후엔 항상 체육활동을 했고 중대장이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를 자주 할수 있었습니다.
공을 좀 찾던터라 간부들 이쁨도 받았고 대대 체육대회땐 이등병때부터 매해 휴가증을 받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임무자체가 다소 특이한 부대고, 당시 국산 기술력으로 이 비행체를 운영하는 첫 부대였던터라 군의 관심이 컷습니다.
그래서 많은 외부인사가 방문했고 장군을 보는게 어느덧 일상화가 되어있네요.
심지어 중,대령은 부사관 정도로 보이는 부작용까지ㅎㅎ.
부대가 비행장이라 모든 별들께선 헬기로 왔고, 그때마다 보고자료 초안은 대부분 제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기념사진도 제가 찍다보니 장군들과 악수하는것도 놀랄일이 아니게 되더라는..
제대까지 본 별의 숫자합이 서른게 정도는 되는듯 합니다.
간부 비율이 높다보니 항상 식단이 좋을수 밖에 없었고 포크 숫가락이 아닌 수저를 기본으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그 많이 피던 담배를 끈었습니다.
크게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었고 금연시 포상휴가도 한몫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결정이었네요.
그렇게 편한? 2년1주의 군생활도 어느덧 끝이나네요.
부대 자체가 3급인가 보안등급 이었고 제가 했던 업무가 기밀사항이 많아 제대전날 보안확약서? 같은걸 적었습니다. 나가서 떠들면 다시 들어온다는ㅋㅋ
후에 돌이켜보면 육체적으로는 편했겠지만..어느 부대든 모든 스트레스와 문제는 육체적 힘듬이 아닌 사람간의 관계에서 온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나름 위아래로 큰 충돌없이 유연하게 잘 대처하며 지냈다 자평하고 그래서 군 생활이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군 내의 병사들 사고가 날때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모든 청춘들이 탈없이, 인생의 좋은 경험과 추억을 가져가는 군 생활이 되길 바래봅니다.
저의 경례 구호는 '진군!' 입니다 ^^
가물가물 합니다ㅋ
전 더군다나 부대주소도 기억납니다. ;;;;;
01-71004***
주소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찾아가라면 갈수있습니다ㅋ
02-760*****
1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조교 출신이고요.
4월 군번이네요...
꽃돼지 띠
86년 입대인데 얘기해봐야
뻥이다 할듯해서 안할랍니다.ㅋㅋㅋ
나중에 알고 보니..다들 아버지가 국회의원, 장군 , 장관 , 암튼 다 빽으로 와서 다들 서로 눈치 안보고 편하게 군생활 했다는...
98-730214**
봐주세요ㅋㅋ
훈련소에서 카운티타고 6군단 본부들어갈때의 그 떨림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위병소부터 본부까지 왜이리 먼지..
을지때인지 모르겠지만 여단과 합동훈련 했던 기억이 있네요.
군단본부가 포천으로 기억되네요.
제 중대는 양주쪽에 있었습니다.
전 친구들이 군대 안간줄알아요
군단장 버프라
5월 19일입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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